이야기

연인의 죽음-마르크 베르나르

은오 2008. 7. 10. 19:45

 

첫눈에 사랑하지 않고 도데체 누가

사랑했다고 할 수 있을까?

- 머로우

 

두 번이나, 그것도 내 잘못으로 나는 그녀를 놓칠 뻔했다. 1938년 어느 가을날 아침 루브르 박물관 밀로의 비너스 앞에서 나는 그녀를 처음 만났다. 그녀가 비너스상 주위를 도는 동안 나는 그녀 주위를 돌았다.

 

나는 곧 그녀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모든 것이 그걸 나타내 주었다. 보랏빛 비로드의 챙 없는 모자, 둔부의 선이 육감적으로 드러나 보이도록 가는 허리에 꼭 조인 외투, 그리고 그녀의 몸 전체에서 풍기는 알 수 없는 그 무엇, 나중에 나는 그녀의 이국풍이 단지 외모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가 우리는 서로 눈길이 마주쳤다. 나는 결코 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낯선 여자에게 말을 건네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불쑥 앞으로 나아갔다. 물론, 바로 이 여자라고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지만 내 안의 무엇인가가 그걸 알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이전의 어떤 여자도 내게 가져다 주지 못한 것을 간직하고 있다는 예감이라도 든 것처럼, 내가 그녀를 그렇게 관심 있게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나는 이것저것 지껄이고 그녀는 짤막하고 부드럽게 응답하면서, 우리는 출구 쪽을 향해 나갔다. 출구에 이르러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Au revoir)-안녕(Au revoir).” 발음이 진하게 들어간 매혹적인 목소리와 억양이었다. 누군지도 모르고 주소도 교환하지 않은 채 헤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안녕이라는 말은 사실 ‘아듀’나 마찮가지였다.

 

내가 한층 열렬하게 그녀의 눈을 쳐다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이제까지 그처럼 반짝이고 그처럼 온화한 푸른 눈을 본 적이 없었다. 그 두 눈을 다시는 못본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이국 여자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얼마큼 물러서더니 거리를 두고 나를 살폈다. 고정되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는 저울대처럼 운명이 우리 위에 있었다. 우리의 모든 존재가 흔들거리고 있었고, 엘스도 나도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알 수 없는 힘이 이미 은밀하게 작동하기 시작한 심오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놀람, 공감, 사랑, 우리는 몇 분 동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단계들을 불태웠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올라보 알기 위해서 물러설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한 신부가 불법 여성 난민들을 거둬 주고 있는 ‘청년의 집’에 돌아가야 했고, 나는 라스파유 가(街)의 내 거처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그리스식 레스토랑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녀의 식사비를 내가 지불하기 위해서 실랑이를 해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강둑을 걸었다. 헤어지는 순간, 우리는 이번에는 확실히 우리가 다른 남자와 여자가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 변화가 어디까지 가는지는 내내 모르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목소리와 웃음과 특유의 ‘r'발음을 듣고 매우 기뻤다. 나는 만날 약속을 했다. 연주회, 극장, 식당, 카페, 카바레 등을 다니며 나는 파리의 안내인이 되었다.

 

며칠 전 불법으로 알자스 국경을 넘어왔던 엘스는 법적 권한이 없는 상태였다. 나는 그녀의 처지를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화창한 한낮에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그것은 향후 31년 동안 지속될 축제였다. 나는 전에 결코 한 여자를 갈망해 본 적이 없는 듯이 그녀를 갈망했다.

 

그녀의 육체는 내가 늘 막연하나마 동경해 마지않았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은 이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은 기쁨을 주었다.

 

위법을 한 처지가 되어 두 번의 해외 이주-그 두 번째 이주가 이루어졌다면 나는 그녀를 영원히 놓쳤을 것이다-중에 파리에 기착 중인 도피하고 있는 한 여자와, 머리는 세상의 시끄러움과 광란으로 가득 차서 국경이 속속 봉쇄되는 조국을 근심스럽게 바라보고는 대 살육을 예감하면서도

 

자신의 무능에 절망하며 어디에서나 증오와 학살과 굴욕밖에는 볼 수 없는 한 남자, 그들이 바로 서로를 인정해 주며 바야흐로 기쁨에 달뜨기 시작한 두 남녀였다.

그러나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질어졌던 것이 바로 그때이다.

 

불과 얼마 전에 되찾은 자유에 도취되어 있던 나는, 너무나도 깊이 엘스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또다시 질곡에 빠질까 봐 두려웠다. 그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적어질수록, 나는 지금 지체하면 그럴 용기도 갖지 못할 거라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더욱 단호하게 끊을 결심을 했다.

 

그녀는 나의 결심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상당히 따지긴 했으나 체념했다. “당신이 원하시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녀 성격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특성이라 할, 자신에게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순종의 모습을 내가 발견했던 것이 바로 그때였다.

 

이틀 동안은 잘 견뎌냈다. 그러나 사흘째가 되던 날, 나는 그녀를 찾아 나섰다. 그녀는 언젠가 내게 불분명한 손짓으로 가르쳐 준 바 있는 생미셸 가의 한 여관에서 방 하나를 빌려 쓰고 있었다.

 

그때 나는 기껏해야 고개나 돌려 보았었다. 가장 근심스러웠던 것은 그녀가 미국으로 떠날 채비를 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핸드백에 신원 진술서와 문학박사 학위증을 넣고 벌써 르아브르 항구에 도착했거나 뉴욕으로 가는 배 위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생미셸 가로 달려갔다. 그녀가 내게 말했던 장소 근처에 있는 단 하나의 여관인 민느 여관 앞에서 머뭇거리다가-그때 나는

 

 “그 여자는 떠나고 없어요.”라는 끔찍한 대답을 듣지나 않을까 두려웠다-나는 머리를 조금 기울이고 웃으면서 나오는 엘스를 보았다. 거기, 보도 위에서 마치 이제는 다시는 결코 헤어지지 않으리라고 외츠는 듯이 나는 그녀를 내 품에 꼭 안았다.

 

차후 죽음만이 우리를 갈라 놓을 수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죽음인 것이었다.

처음 만난 몇 번 동안,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기 전에 나는 새 사냥꾼처럼 부드럽게 나의 손을 그녀의 손 위에 얹어 놓곤 했다.

 

그것은 그녀가 우리의 육체는 단지 유희거리가 아니라고, 마음과 영혼이 함께하는 것이라고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기 싫었던 말들이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왔다.

 

내가 느낀 것을 정확하게 공명해주고 완전하게 표현해주는 그 말들을 나 이전의 아무도 쓴 적이 없었던 것만 같았다. 그 말들을 하는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나의 행운이 예기치 않은 것이며, 내가 이제 막 다달은 세계 같은 혜택받은 세계가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전에는 나 자신도 몰랐던 것처럼, 그런 행운을 잡아 보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남녀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둘로 말하자면 우리는 그 말들을 아무런 싫증도 느끼지 않고 들을 수 있으리라. 왜냐하면 그 말들은 이전에 결코 그런 식으로, 그 입술을 통해서, 그 미소와 그 친절한 믿음을 담고 말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말들을 되풀이할수록 그 말들은 퇴색하기는커녕 한층 더 빛을 발하는 것이다.

 

우리는 테이블 양켠에 앉아 서로를 쳐다보고 서로를 가늠해 보는 것이었다. 그는 누구인가? 그녀는 누구일까? 이것이 정말 진짜이고 가능한 일인가?

 

우리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천만에, 이런 희열이, 이런 감격이 우릴 속일 수는 없다. 우리 아닌 다른 것이 마치 우리 자신인 것 같은 이 모든 것에의 일치감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