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당하는 보이스 피싱
'알고도 당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건 뒤 송금을 요구하는 사기수법인 '보이스 피싱'이 경기 불황과 함께 더욱 기승을 부려 피해를 입는 서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경찰청에 신고된 보이스 피싱 사례는 2006년 5월부터 올해 8월까지 1만315건, 피해금액만 1017억원에 달한다.문제는 보이스 피싱 피해 건수가 해마다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박민식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적발된 보이스 피싱 건수는 1480건, 2007년 3903건으로 대폭 늘었다. 2008년에는 3월까지 889건으로 올해 총 4000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들어 보이스 피싱의 수법이 생활밀착형으로 진화하면서 피해가 급증,주의가 요망된다.
◇보이스 피싱 사기수법 점차 진화
네티즌 A씨는 최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으로 사칭한 남자의 전화를 받았다. 그 남자는 A씨의 이름과 주민번호는 물론 집주소까지 정확히 얘기하며 "보이스 피싱 범인들이 잡혔는데 그 계좌 리스트에 올랐다. 나머지 통장도 위험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속아 넘어갔다가 통장의 잔액과 통장 번호 등을 꼬치꼬치 묻는 바람에 전화를 끊었다는 A씨는 이후 경찰청에 전화해본 뒤 보이스 피싱이었음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네티즌 ID '강인'은 건강보험 환급금 60만원을 찾아가라는 전화를 받았다. 즉시 찾아가지 않으면 국고에 환수된다는 얘기를 듣고 반신반의하면서도 아까운 생각이 들어 하마터면 속아넘어 갈 뻔했다.
이처럼 보이스 피싱 수법이 나날이 진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생활밀착형 보이스 피싱 수법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우체국 택배 반송이나 신용카드 반송, 보험료 환급,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불출석 과태료 등 들으면 귀가 솔깃해지고 믿지 않을 수 없는 그럴 듯한 내용이 많다.
이같은 수법은 서민들 중에서도 특히 노인들이 잘 속아넘어가 피같은 돈을 날리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보이스피싱이 해외에서 주로 걸려오면서 돈을 송금해 날리는 것 외에도 국제전화요금도 물어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ARS 번호를 누르면 국제전화로 연결돼 국제전화요금이 부과되는 피해를 입게 된다.
경찰청 마약지능수사과 관계자는 "보이스 피싱 사기 수법 자체가 다양해졌다. 세금이나 건강보험료, 전화요금, 보험료, 신용카드 등 실생활에서 자주 이용하는 기관이나 업체를 사칭하기 때문에 속아넘어가기 쉽다.
보이스 피싱이 근절되지 않고 계속해서 기승을 부리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이스 피싱의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전화를 받았을 때 반드시 소속과 이름을 확인한 뒤 전화를 끊은 다음 해당 번호를 검색해 전화를 걸어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사기업자들이 알려주는 전화번호는 인터넷 번호로 연결되므로 반드시 114에 문의해 확인한 번호로 전화를 걸거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나 해당 기관의 대책은 미비
보이스 피싱 사기수법이 날로 지능화되고 피해 사례도 크게 늘고 있지만 정부 및 해당 기관의 대책은 미비하다. 보이스피싱 업체들이 전화번호를 계속 바꿔가면서 보이스피싱을 시도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단속이 어렵다는 것. 우체국은 피해 예방을 안내하는 문구를 홈페이지에 게시한 게 고작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보이스 피싱은 검거가 정말 어려운 범죄다. 전화가 외국에서 걸려오는데다 전화 자체도 대포폰이고 통장도 대포통장을 쓰기 때문이다. 돈이 들어오면 바로 인출하고 한 번 쓴 통장은 안쓰기 때문에 범인 검거에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청이나 우체국 등이 대책 마련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해당 기관들이 손을 놓고 있어서는 보이스 피싱이 근절되기는 커녕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 국제사법위원회 박민식 의원은 보이스 피싱 방지를 위해 "보이스 피싱 전화를 거는 장소가 대부분 외국이기 때문에 통신사가 수신자에게 국제전화임을 알려주는 '국제전화 사전안내제'를 실시해야 한다"며
"금융정보분석원이 단기간에 동일인 명의로 여러 금융기관에서 다수 개설되는 통장에 대해 수사기관에 통보해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휴대전화를 가입할 때도 본인여부를 확인해 대포폰 개설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법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한 의원은 보이스피싱 방지를 위한 3가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보이스 피싱 범죄의 특성상 전화를 거는 장소가 대부분 외국이기 때문에 통신사가 수신자에게 국제전화임을 알려주는 `국제전화 사전안내제'를 실시하고 금융정보분석원이 단기간에 동일인 명의로 여러 금융기관에서 다수 개설되는 통장에 대해 수사기관에 통보해 주는 것이 그 방안이다.
이와 함께 금융실명제 상 계좌개설과 마찬가지로 휴대전화 가입 시의 본인여부 확인과 위임장 첨부 등을 통해 대포폰 개설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법도 제시됐다.
한 의원은 "보이스피싱 범죄가 가능하게 만드는 필요한 조건을 최대한 제한해야 하는데 이들 방안은 새롭게 법을 만들 필요 없이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만 갖고 있으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증권사를 사칭한 전화 사기가 확산되고 있어 금감원이 주의보를 발령했습니다.
사기범들은 증권사 콜센터를 사칭해 계좌에 잔액이 부족하다는 전화 음성 메시지를 보낸 뒤 돈을 입금하도록 하거나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국내 통신업체들도 해외에서 걸려오는 전화의 경우 휴대폰 국제전화 표시 서비스를 검토하고 있다. 한국통신 관계자는 "현재 보이스 피싱으로 확인된 전화번호에 대해 차단하는 기술을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