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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고 무구를 챙겨 전쟁터로 떠난다. 신의 땅을 되찾기 위한 성전, 십자군이라는 이름으로 모여드는 남자들.
그리고 그들을 배웅하는 여인들.
남자는 걱정이 앞선다. 내가 전쟁터에 간 동안 다른 놈을 만나면 어떡하지? 고민은 한 두 사람을 한 것이 아니였고, 결국 자신들의 투구와 갑옷을 만들던 대장장이를 찾아가 요구한다. "정조대를 만들어라~"
사실 정조대의 원형이 중세 십자군 전쟁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 당시 보편적으로 출정에 앞서 자신의 부인에게 정조대를 채웠다는 것은 사실이다. 외음부를 감싸는 형태에 길게 틈이 벌어져 있어 배설에는 무리가 없지만 성관계를 막는 형태로 이루어진 정조대. 그런데 남성들은 비단 앞부분만 걱정된 것이 아닌지 속옷처럼 앞 뒤를 감싸는 형태로도 만들어졌다.
물론 뒤까지 감싸는 형태는 좀 더 비쌌다고 한다. 기능적으로는 확실히 작동하는데 건강상의 문제는 어땠을가? 철로 만든 물건이니 부식하기도 쉬울텐데. 이에 대한 해결책인지 정조대는 대부분 은도금이나 금박을 씌워 부식을 막았다고 한다.
자, 이제 안심하고 전쟁터로 나가는 남자들. 그들은 자신이 채워놓은 정조대를 굳게 믿고 전쟁터로 나간다. 정말 정조대는 그들의 믿음만큼 훌륭한 것이 었을까?
천만에, 만약 정말로 그랬다면 누구하나 정조대를 차려고 하는 여자들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정조대는 남자들의 뒷통수를 치는 물건이었다. 전쟁터를 나가지 않는 이들도 자신의 딸이나 부인에게 정조대를 입히는게 일반적이었는데 이렇게 해놓고는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오히려 눈을 피하기 쉬웠으며 정조대를 만든 대장장이에게 돈 몇 푼 쥐어주면 쉽게 자기들 손에도 열쇠를 쥘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조대는 그것을 채우는 남자들에게만 위안이 되었을뿐 오히려 부추긴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전쟁통에 나간 남편이 죽기라도 한다면 평생 정조대를 차고 살아야 되는 이치인데 그걸 몰랐던 그 당시 남자들은 바보였을까?
하여간 정조대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억압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성들의 어리석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물건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인터넷에 남성용 정조대에 대한 사진도 보이는데 실제 남성용 정조대 역시 존재 했었다. 물론 사진처럼 감싸는 형태가 아닌 좀 더 고통스러운(성기 표피의 일부를 늘여 틀에 끼우는) 형태로 발기하게 되면 엄청난 고통이 밀려와 성관계 뿐만이 아닌 자위를 막는 기구였다고 한다.
옛 시대 자체가 성적인 것들을 악한 행위로 규정하고 꼭꼭 숨겨왔다고 해야 하나? 하긴 우유에 말아먹는 시리얼 식품도 애초에 성욕을 억제하기 위한 음식이었다고 하니, 근대까지도 별 다를바 없었다고 보여진다.
기타 여러모양의 정조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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