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긴팔을 입고 한낮의 따가운 햇살에 땀을 흘렸다가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면
선선해지고 나는 차창을 반쯤만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 모든 문을 닫고 잔
엊저녁의 잠은 상서롭지 않았다.
새벽에 깨어 목마름으로 물을 한 잔 들이켰을 때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건너편
아파트의 복도는 괴괴했다.
무엇엔가 놀라 벽을 차고 일어난 새벽 세 시. TV를 틀어 프리미어 리그와 이유없이
벗는 19禁의 프로와 이십사시간 한다는 채널의 울궈먹기 뉴스를 돌려보다 잠을 청하
기로 했지만, 한번 달아난 잠은 눈만 아프게 할 뿐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 시간 쯤이면 길게 신음하던 어머니의 목소리. 가위에 눌려 몸을 뒤틀던 어머니의 움직임이 없어진 지 이십 몇년이 지났다. 그런 어머니의 가위눌림을 나도 답습하는 것일까.
그 긴 가위눌림이 무서워 흔들어 깨우면 어머니는 한숨을 길게 내리쉬며 가슴을 부비던 내 손을 잡아주고는 했다. 허나 지금 새벽의 악몽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아침 신문에서 1910년대에 남자의 평균 수명이 25 세가 다 차지 않았다고 했던가. 그런 것을 보면 나는 너무 오래 살았다. 살면 살수록 더욱 살고 싶어지는 게 인생이라고 하지 않던가. 처녀가 시집가지 않는다는 것과 늙은이가 빨리 죽어야 한다는 것은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했건만, 요즘은 그리 빤한 거짓말은 아니다.
나는 어디에 치중하며 살아왔을까. 혹 보여지는 나만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아니면 무작정 보기만 하고 살아온 것인가. 환자처럼 누워 채널을 돌리며 볼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TV를 끄지만 잠은 아무리 해도 다시 오지 않는다.
가을이다. 거둘 것이 없다. 수확할 것이라고는 빈 소주병과 찢어진 달력 한 장. 올봄부터 가지고 다니는 아이의 이전 1등 성적표 한 장. 그게 전부다. 삶이란 때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라는 위로를 품고 이 가을을 맞이해야 하는가.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약하다.
이 가을에 나는 무엇인가. 무딘 낫을 들고 빈 들판에 서서 사위를 둘러보는 나는 누구인가. 내 낫은 어디에 써야 하는가. 메마른, 아무 것도 심지 못한 들판에서 서성이는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베짱이의 가을은 덧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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