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성(性)개방시대이다. 자유연애가 일반화된 지도 오래다. 그만큼 남녀 사이는 서로 자유롭게 사랑을 하고 또 결혼을 통해 열매를 맺기도 한다.
미남미녀가 거리에 넘쳐나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애정표현을 서슴지 않고 한다. 그저 좋아서 하고 책임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사랑은 동사라며 책임 없이 감정 따라 능동적으로 움직여 간다.
좋을 땐 꽃이고, 싫어지면 먼지처럼 털어버린다. 문제는 가벼운 책임성 없는 사랑놀음이 문제이다. 외양만 좇아가다 화무십일홍처럼 낙화하는 그런 사랑이 들불처럼 번져간다. 그렇기에 더욱더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사랑이 무엇일까? 사랑은 김치와 같은 것이다. 풋풋한 배추가 소금에 절여 갖은 양념으로 일정한 기간에 발효로 숙성을 통해 맛있는 김치가 되는 것이다. 내게 사랑은, 내면이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맞아 인고를 통해 얻는 승화된 정신세계의 충일감과 만나는 일이다.
사랑은 긴 기다림으로 크는 나무라 할 수 있다. 희생과 인내 없이는 꽃과 열매를 도저히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곰이 동굴에서 인내를 통해 여자로 환생하듯이, 사랑은 기다림을 통해 나를 새롭게 변화하는 숙성만이 기쁨으로 이어지는 것이란 걸 깊은 체험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어둡고 힘든 세월없이는 알찬 사랑의 결실이 진정 없는 것이다. 깊고 큰 사랑은 세월마저도 장애물이 될 수 없다. 두 사람의 진실한 믿음만 있으면 태산도 녹일 수 있는 것이 또한 사랑의 힘이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진다. 일말의 책임의식이나 까만 불면의 고뇌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사랑할 때는 불같이 사랑하다 헤어질 때는 타다만 재처럼, 서로 얼굴에 묻은 재가 상대의 탓이라고 거칠게 훑어 내린다. 마흔 중반에 서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한 번 깊이 관조(觀照)해 보게 되었다.
지조 있고 품격 높은 사랑으로 내 가슴을 이슬비처럼 적신 사랑이 있다. 청마 유치환과 정운(이영도)의 사랑을 보면서, 남녀 사이에도 에로스 사랑을 뛰어넘어 정신적(플라토닉) 사랑도 얼마든지 가능함을 사례를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 마음의 잊지 못할 그리운 풍경소리로 다가온 것이다. 중국 화씨지벽(和氏之壁)의 제일가는 구슬처럼 보석 같은 사랑의 전설로 내 가슴에 똬리를 틀게 되었다.
이영도는 재색을 고루 갖춘 규수로 출가하여 딸 하나를 낳고 29세에 청상이 된 몸으로, 해방이 되던 그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 교사로 부임해 온다. 청마는 국어교사로 재직 중에 첫눈에 반해 정운을 깊은 물그림자로 가슴 밑바닥에 연잎처럼 머물게 된다.
이때부터 청마의 구애 편지는 계속된다. 청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쓰고 시를 썼다. 정운에 대한 구애의 마음이 얼마나 애절하고 안타까운지 이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나는 어쩌란 말이냐"
절절한 임 향한 사랑의 절규가 가슴을 저미게 하는 시이다.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정운을 향한 애절한 시편들은, 빙산처럼 굳고 단단한 마음 빗장을 푸는 동기가 된 것이다.
3년의 긴 구애 끝에 영도의 마음을 얻었으나 청마는 이미 기혼자였다. 살뜰히 품어 안을 수 없는 사랑이지만, 청마는 20년을 하루도 멈추지 않고 일편단심으로 표현한 시가 학이 되어 정운을 향해 날아갔다.
그 간절하고 절실한 청마의 마음을 알기에 정운은 편지들을 분신처럼 고이고이 모아두었다. 그 후로도 안타까운 사랑은 계속되다가 1967년 2월 어느 날, 청마 유치환은 귀갓길에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을 맞는다.
이들의 사랑은 끝났지만, 사랑을 변함없이 노래한 시들이 탁구공처럼 서로 마음을 오고 간 편지가 수천 통이 넘는다. 그 많던 편지는 아쉽게도 6.25사변 때 일부 불타버리고, 5000통이 남은 것을 추려 정운은 청마,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 하였네” 란 시집을 사후에 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이 한 편의 시로써 그들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가슴 가득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이렇게 고운 보배를 나는 가지고 사는 것이다.
마지막 내가 죽는 날은 이 보배를 밝혀 남기리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 연가(戀歌)가 아니던가? 하루를 살아도 마음을 다 내어주고 아껴주며 추억을 그리며 평생 살 수 있어 청마와 정운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였을 것이다.
시어의 바람처럼 죽어서도 사랑하는 연인들의 찬미 시로써 애송 되니, 나로서도 진정 부러운 사랑이다. 이 세상에 사람이 살고 있는 한,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무궁할 것이다.
사랑이 홍수를 이루는데 애석하게도 가슴을 봄비처럼 적시는 그런 사랑이 왜 이다지도 그리운지 모르겠다. 가을이어서일까? 아니면 가을비 탓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내 사랑이 너무 편하고 아늑해서인지는 몰라도, 평생을 화롯불처럼 생각 하나만으로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추억 하나만으로도 평생 외롭지 않을 그럴 사랑이 있다면 그사람은 누가 뭐래도 분명히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 사랑 하나 안고 살 수 있다면, 연인들에게는 분명 아름답고 지조 높은 사랑으로 부러움을 살 것이다.
사랑은 영혼의 교류이다. 특정한 한 사람과 정서적으로 공감하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지조 있게 사랑에 대한 믿음과 정조를 지킨 사랑만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날 것이다.
사랑은 다다익선(多多益善)도 아니고 젊은이의 특권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을 끝없이 흠모하고 애타게 그리워하며, 그 사람과의 가슴 떨리는 살가운 추억 하나만으로도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는 용기와 흔들림 없는 지조만이 품격 높은 사랑이라고 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 사랑이 부부이면 금상첨화여서 좋겠고, 법과 도덕의 범주 안에서 단 하나의 사랑이면 족하리라.
사랑을 생활의 한 방편으로 생각하는 소수의 요즘 젊은이들의 잘못된 의식을 보노라면, 가슴이 아프고 가엾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천박한 사랑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측은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첫눈과 같다.
한 번 더럽혀진 사랑은 첫눈 같은 느낌을 평생 맛볼 수 없다. 이른 아침, 남들이 잠든 새벽에 첫눈이 소복이 쌓인 길을 걷을 때의 설렘과 느낌은 사랑할 때만이 느낄 수 있는 고귀한 감정인 것이다.
사랑은 두뇌의 화학적 작용을 지나 가슴으로 내려와 살포시 안긴다. 머리에서 시작한 사랑이지만, 지성보다는 감성이 온통 지배하는 마음의 떨림이며 삶의 변화다. 사랑을 하면 세상도 달라 보인다.
사랑을 하게 되면 도파민, 페닐에틸아민, 옥시토신이란 호르몬이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길어도 2년이라 하지 않던가? 그런 사랑을 죽어서도 가슴에 품는다는 것은 분명 예사롭지 않은 품격 높은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사랑을 하고 싶고 가꾸고 싶다. 희망이 있으니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사랑은 삶을 변화시킬 사건이자 소중한 추억이다. 사랑 없는 일생은 참으로 슬프다. 청마 유치환과 정운과의 정신적인 사랑을 보면서, 선택한 내 사랑을 끝까지 수성하여 아름다운 지조로 사랑을 지킬 때만이 백구과극(白駒過隙)의 인생에서 유성처럼 긴 여운을 안고 사라지는 아름다운 추억의 한 생이 될 것이다.
사랑은 삶에서 가장 황홀한 광채며 멈추지 않는 에너지이다. 역사가 존재하는 한, 진실한 사랑은 삶에서 한 떨기 꽃인 것은 분명하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인간구원의 마지막 희망은 사랑만이 최후의 등불로 남을 것이다
사랑에 대한 그런 의식도 중요하지만 실천하는 사랑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마음을 다 주는 지극한 사랑이라면 그 사람이 얼마나 살았던가 행복한 사랑을 하였다 말할것이다. 뜻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랑을 믿고 책임지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랑의 진정성을 지금도 믿고 산다. 가벼운 사랑은 얇은 삶을 사는 것이고 정도가 아닌 사랑은 많은 아픔과 애틋함이 자리한다. 하지만 자신이 진실하고 자신의 삶을 다 내어놓은 수밖에 없는 이 생에서 단 한 번의 사랑이라면 족할 것이다.
책임 있는 사랑이 전제되어야 사랑의 완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짧은 시간에 피었다지는 초미니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진정한 사랑이 주는 인내와 끊임없는 관심을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