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쏘기

발여호미, 후악호미

은오 2015. 11. 13. 14:49

대략 2000년대 중반(?)의 일인 것 같다. 대한궁도협회가 집궁제원칙에 나오는  <발여호미>를 <후악호미>로 바꾸어 제시하였다.

전해 듣기에는 어느 원로 궁사의 수정 제안을 받아들인 결과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절의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점을 한 번 생각해 보자. 나는 90년대 중반에 집궁을 하였는데 그 때는

<전추태산 발여호미>였다.   의미는 "앞 팔은 태산밀듯이 하고, 뒤팔은 호랑이 꼬리처럼 빼라"는 것.  헌데 '호랑이 꼬리처럼 뒷팔을

 뺀다' 이 말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였다.  호랑이 꼬리가 일반 동물과 달리 하늘을 향하여 솟아 있으니 그런 식으로 팔을 빼라는 말이다

라는 분도 있었고, 호랑이가 먹이를 발견하고 달려갈 때 뒷 꼬리를 쭉 일직선으로 뻗으니 그렇게 팔을 빼야한다는 말을 하는 분도 계셨다.  

 

그런데 실상 많은 궁사들이 팔을 뒤로 빼지 않고 어깨 위에서 똑 떼는 사법 소위 반깍지 사법을 쓰고 있었음으로 이 구절은 반깍지와는

무관한 구절이 되고 있었다.  이론으로 배우지만, 실제에서는 적용되지 않은 사문화된 구절이었을 뿐이었다.  뒤에 2000년대 초반에

뒷팔을 길게 빼는 '온깍지'라는 용어가 새롭게 부각되고 전통사법은 온깍지 사법이라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그러자 이 구절의

의미도 다시 언급되었다.  다만 풀이는 이전 방식 그대로 였다.  <호랑이 꼬리의 모양새대로 뒷팔을 빼야 한다>는 정도로 해석되었는데,

문제가 되는 <꼬리의 모양새>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구구 각각이었다.

 

이 과정에서 대한궁도협회가 <발여호미>를 <후악호미>로 바꾼 것이다.  <후악호미>는 강조점이 달라진다. 호랑이 꼬리의 모양새가

아니라, 호랑이라는 동물 자체의 위세가 전면에 등장하고, 그 호랑이와 대적하는 사람의 힘씀과 마음가짐에 방점이 놓여진다.  호랑이

에게 잡혀 먹지 않을려면 호랑이가 겁을 먹고 필사적으로 도망가게 해야하고, 그렇게 하려면 호랑이 꼬리를 죽자사자 <꽉> 붙들어야

한다는 의미로 바뀌어 해석된다. 꼬리의 모양이 아니고, 꼬리를 붙잡는 힘쓰기가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원전의 뜻을 복구한 것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원래 이 구절은  명나라 말기의 척계광 장군이 편찬한 기효신서(紀效新書)

에 등장한다.  궁시 연습방법을 논하면서 "활을 쏘면서 앞 손은 태산을 미는 듯이 하고 발시는 뒷손으로 호랑이 꼬리를 잡는 것 같이 해야 

한다"(前推泰山 發如後握虎尾) 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글자 수가 10개다.  이 두 구절을 궁도협회에서 글자 수를 4개씩으로 맞추면서 오해

의 여지를 남겼다. 처음에는 <전추태산 발여호미>로 했다. 그것이 문제가 되자 다시 <전추태산 후악호미>로 바꾼 것이다.

 

<후악호미>로 해야 원전의 뜻이 산다.  앞 구절은 줌손을 태산을 밀듯이 힘주어 밀라고 하고 있다. 힘쓰기를 말한 것이다.   그러면 뒷구절

도 당연히 힘쓰기를 언급해야 한다. 뒷팔로 당기는 데 앞팔과 균형을 맞출 정도로 힘껏 당겨야 한다는 말이 나와야 한다.  앞 뒤 팔에 고르

게 힘을 주는 즉 <쌍분 雙分>을 이루도록 하려면 앞손이 태산을 밀만큼 힘주었다면 뒤손도 그에 대응할만큼 힘을 주고 당겨야 한다. 

이 뒷손 당김을 극적으로 표현하면서 <호랑이 꼬리>를 <당기듯이 혹은 잡듯이> 라는 '호미' 비유가 등장한 것이다.  호랑이 꼬리의

모양새-늘어졌던, 고추세웠던-는 여기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호랑이 꼬리를 얼마나 '꽉 ' 잡느냐 못 잡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릴 수

있다는 절박감으로 '잡아 당겨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후악호미>가 되면 이 구절은 반각지든 온깍지든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법 교훈이 된다.  사법 제원칙이 말 그대로 두루 통용

되는 원칙이 된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발여호미>라는 말 때문에 활이 호랑이 꼬리의 모양새에 매달려 왔다.  <후악호미>로 바꾸

었으나, 여전히 꼬리 모양에 집착하고 있으면 바꾼 의미가 퇴색된다.  호랑이 꼬리를 잡아 빼듯이 가득 힘을 주어야 한다는 비유를 이해

해야 집궁 원칙이 되살아난다. 

 

<전추태산 후악호미>!!!  활을 당기고 밀 때 마다 이 구절을 되뇌이면서 쏠 때, 나는 그냥 당겼다가 놓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무언가를 느

끼곤 한다. 혹시 활을 배우기 시작한 분이라면, 반각지 혹은 온깍지 사법에 무관하게, 이 여덟 글자를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그리고

그 뜻을 순간적으로 되새기면서 한 번 쏘아보시기 바란다. 저절로 지사도 되고, 화살도 여느 때보다 더 힘차게 날아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에 따른 활쏘기의 즐거움도 물론 늘어날 것이고.         [화랑정 김기훈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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