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시의 특성상 가장 취약한 것은 물이다.
깃 자체도 물을 만나면 흐트러질 뿐 아니라 깃을 붙일 때 사용한 접착제 역시 떨어지기 십상이다.
화살대도 물을 먹으면 무거워지고, 화살의 무게 중심도 변하게 된다.
햇볕이 아주 쨍쨍해도 죽시는 재질의 변화가 오게 된다. 죽시를 만들 때 약간은 휘어진 살대를 불로 쏘여 곧게 펴서 만들기
때문에 강한 햇빛을 받으면 궁사가 모르는 사이 살대가 휘어진다거나, 모래에 떨어진 화살에 복사열이 가해져 바짝 건조되
거나 재질변화가 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아주 추운날도 마찬가지다. 영하의 기온에서 죽시를 쏘게 되면 죽시 내부의 속살에 남아있는 수분이 얼게되어 과녁에 맞는
순간 부러질 가능성도 있다.
죽시의 가격도 평범한 생활을 하는 궁사들 입장에서는 결코 얕잡아 볼 수 없을 정도다. 활을 낼 때마다 부러진 화살을 보면
마음도 같이 아파옴은 인지상정이다.
이렇듯 까다로운 죽시를 잘 손질하고 관리하여 오래도록 사용할 수 없을까.
〈동백 기름을 화살대에 바르고 매일 손질한다.〉
아주 옛날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빗에다 동백기름을 발라서 머리를 빗었다. 동백기름은 빗살의 수명을 오래가도록 할 뿐 아니라
머리카락과 두피를 보호하는데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전남 순천 송광사 입구에서 금죽헌을 운영하는 얼레빗 무형문화재 김기찬 선생은「가느다란 빗살을 오래도록 형태를 유지하고
아름다운 색과 무늬를 우러나게 하기 위해 빗에다 동백기름을 발랐다.」고 했다.
화살도 대나무로 만들어졌다. 화살대에다 동백기름을 바르고 마른 헝겊으로 열이 나도록 문질러주면 화살대가 튼튼해지고 어지
간한 습기는 화살대안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하고, 또 화살 내부의 수분이 증발되지 않게도 한다.
간혹 야사를 하고 화살을 주우러 가면 밤 안개나 밤이슬을 맞아 화살대가 축축한 경우를 보게 된다. 이때도 동백기름을 바른 화
살대는 겉에만 눅눅할 뿐 화살의 내부까지 습기가 스며들지 않아서 마른 걸레로 닦아만 주면 화살은 금방 뽀숭뽀숭 해진다.
특히, 관중되지 않고 땅에 박힌 화살의 경우, 촉 부분의 화살대가 수분을 많이 먹고 약해져서 자칫 부러지기 쉽다. 최근에 관중하고
나서 촉 바로 윗 부분이 부러진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부러진 화살의 내부를 보면 습기를 머금어 거의 썩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화살에 구두약을 바르기도 하는데, 구두약은 화공물질로 만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살대를 약화시키고,
흙먼지가 쉽게 붙게되며, 바르고 닦는데 여간 힘들지 않다.
반면에 동백기름은 순수 천연기름으로써 대나무와 궁합이 잘 맞아, 대나무 살의 섬유질을 튼튼하게 하고, 화살의 원형을 오래도록
유지하며, 시간이 갈수록 살대 겉표면의 무늬가 아름다워지고, 향기도 좋다.
화살 깃에도 가끔씩 동백기름을 살짝 헝겊에 묻혀 닦아주면 깃의 윤기가 살아나고 습기가 잘 스며들지 않아 깃의 원래 상태를 오래
도록 유지케 한다.
〈손질방법〉
① 마른 헝겊으로 화살촉, 화살대, 깃의 흙먼지를 깨끗하게 닦아준다.
② 고운 헝겊을 두 세겹 작게 포개어 동백기름을
묻힌다.
③ 살대, 촉, 깃 순으로 기름 묻은 헝겊으로 닦아준다.
④ 5분쯤 지나서 마른 헝겊으로 살대가 열이 나도록 골고루
잘 닦아준다.
⑤ 그늘지고 평평한 곳에 깃이 겹치지 않도록 화살을 펼쳐서 말려준다.
⑥ 활 내고 나서도 마른 헝겊으로 다시
한번 문질러 준다.
※ 헝겊은 헌 런닝셔츠 조각이 좋음.
〈죽시의 관리방법〉
화살에서 깃의 역할은 화살이 날아가는 도중에 방향의 안정성을 유지해주고, 부력을 발생시켜 멀리 가도록 한다. 간혹, 발시한
화살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은 발시 동작이 잘못된 경우도 있지만, 깃의 위치가 잘못되어도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깃이 없어
도 화살은 날아가지만, 비거리(飛距離)가 짧고,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날아가게 된다.
화살에서 깃은 마치 유도탄(missile)의 날개(wing)와 같은 역할을 한다.
총알이나 포탄처럼 날아가는 발사체의 정면 단면적이 작고, 몸체 길이가 짧으며, 고속으로 날아가는 물체는 날개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로켓포, 미사일 등은 반드시 날개가 있다.
화살도 여러 가지가 있다. 궁사마다 자기 체형, 체력, 쏘임 동작, 활의 강도, 선호도에 따라 길이, 무게, 굵기가 다양한 화살을 사용한다.
어느 궁사가 같은 무게, 같은 길이의 화살을 쏜다고 할 때, 굵은 화살이 좋은지 가느다란 화살이 좋은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단지, 개인의 선호도, 심리적 안정감, 경험 등에 의해 결정할 것이다.
과거의 우리 조상들은 숱한 경험과 시행착오에 의해 오늘의 죽시를 만들어 냈지만, 언젠가는 화살 깃의 크기, 면적, 모양, 부착
위치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실험하여, 재질과 제작기법은 옛것과 같이 하되, 성능이 우수한 죽시가 나오게 될 것이다.
활과 화살이 군사적 주요 병기(兵器)로 사용되던 시기의 화살대는 싸리나무, 대추나무, 먹감나무, 산벚나무, 살구나무, 박달나무,
배나무 등 단단하고 질긴 나무를 다듬어 옻칠이나 기름칠을 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훗날 이러한 나무 화살은 과녁에 관중할
때의 충격에 약하여 자주 부러지거나 휘게되어 점차 대나무가 많이 쓰이게 되었던 것이다. 꿩 털을 깃으로 사용한 것도 그렇다.
아주 예전에는 화살 자체를 깃 모양대로 나무를 깍아서 사용하기도 했다. 그 또한 깃이 부러져 나가거나, 화살의 무게중심이 뒤로
이동되어 비거리가 짧은 단점이 있어 점차 가벼운 소재를 찾다가 꿩 털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꿩털은 여러 단점을 지니고
있어, 만약에 누군가가 꿩털 모양을 한 신소재로 깃을 만들어 붙이면 어떨까.
깃의 손질은 매우 중요하다.
매 활을 낼 때마다 깃은 흐트러진다. 당기면서 흐트러지고, 관중하여 튀어 나오면서 땅에 닿아 또 흐트러진다. 그래서 살을 주우러
가면 화살 하나하나 주울 때마다 깃을 손으로 쓰다듬어면서 주워야 한다. 주워가지고 오면서도 촉 부분을 움켜잡아 가급적 깃끼리
서로 부딯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주워 온 화살은 살대에 올려놓기 전, 화살 하나하나를 촉-살대-깃 순으로 잘 닦아서 깃과 깃이 서로 닿지 않도록 하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다 가지런히 놓아야 한다.
활을 다 내고 화살을 챙길 때도 마찬가지다. 화살을 한 움큼에 잡고 걸레로 쑥쑥 닦아서 전통에 넣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어떤 결과가 올까.
① 습기가 가장 많이 묻어있는 촉 부위의 살대 속이 썩어간다.
② 살대에 묻어있는 습기와 흙먼지가 엉겨붙어 겉살의 노화를
촉진한다.
③ 흐트러진 깃이 흐트러진 상태로 있어 깃의 수명이 짧아진다.
④ 다른 화살에 맞거나, 돌멩이에 부딯치고, 과녁을 스칠 때
생긴 충격등으로 살대에 작은 손상이 생겨도 알 수 없다.
만약, 화살에 상처가 생긴지 모르고 활을 내게되면 궁사가 자칫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된다. 실제 이런 경우가 많이 발생하였다.
화살을 잘 챙긴다는 것은 화살의 수명을 연장시킬 뿐 아니라 궁사의 안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 화살 하나하나를 닦을 때마다 자기
마음도 닦는다고 여기면 이것 자체가 심신을 수행하는 한 과정이며, 궁사의 애정이 화살에게 전이(轉移)되어 화살만 봐도 궁사의
심성(心性)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죽시를 잘 관리하고 오래도록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
① 활 내기전에 죽시 하나하나를 동백기름이 약간 묻어있는 헝겊으로 1차 깨끗이 닦고, 깃도 가지런하게 손질한다.
살대 표면에 너무 기름기가 많으면 안되므로 2차로 마른 헝겊으로 다시 잘 닦아준다. 오늬쪽에 기름기가 있으면 활 낼 때 낙전(落箭)
가능성이 있으므로 오늬 부분은 기름칠을 하면 안된다.
② 깃을 눈 높이로 들어올려 밝은 쪽으로 향하고 접착부위를 확인한다.
간혹, 깃이 부분부분 살대에 확실하게 접착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나무접착제(목공본드)를 이쑤시개 끝에 살짝
묻혀 바르면 된다.
③ 화살을 낼 때 가급적 1순 내고 줍도록 한다. 2순을 내고 살을 줍게되면 시간이 많이 지나서, 땅에 꽂혀 있는 화살은 습기를 많이
머금게 되고, 관중하여 모래바닥에 있는 화살은 깃이 흐트러진 상태로 오래 있게 되어 깃의 모양이 변하게 되고, 살대에 습기가
스미게 되며, 강한 햇살아래에서는 살대의 변형을 가져 온다. 실제로 골프채의 경우 겉은 윤이나고 번지르 하지만 손질을 하지
않으면 샤프트 안쪽에서는 습에 의한 부식작용이 일어나 쉽게 부러지는 경우가 많다.
④ 화살을 주울 때 촉 부분을 잡도록 하며, 깃을 가지런하게 쓸면서 줍는다.
⑤ 주워 온 화살은 하나씩 촉부터 걸레로 닦아주고, 살대는 약간 따뜻할 정도로 마찰을 하여 문질러서 닦아주며 깃 부위도
조심스레 닦아준다. 이때 화살의 상태를 육안으로 확인해야 한다.
⑥ 활을 다 냈다면 전통에 넣기 전에 반드시 동백기름이 묻은 헝겊으로 잘 닦아서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보관한다.
간혹, 건조를 위해 점화장에 죽시를 넣는 경우가 있는데 생각해 볼 문제다.
왜냐하면 죽시의 섬유질은 일정량의 수분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너무 바짝 마르면 살대의 무게 중심이 바뀌게 되거나, 살대가
변형되며, 화살 자체의 강도도 약해진다. 가장 좋은 보관장소는 상온(常溫)의 습기가 적고 그늘지며 통풍이 잘 되는 곳이다. 굳이
점화장에 넣는다면 잠깐 이용함이 좋다.
⑦ 최소 한달에 한번쯤은 화살의 무게를 서로 비교해서 확인하고, 무게 중심도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가급적 같은 무게에, 비슷한
무게중심의 화살을 골라 쏘는 게 좋다.
처음 화살을 살 때 길이와 무게를 맞춰서 사지만, 사용하다 보면 무게도 달라지고 무게중심도 각각인 경우가 허다하다. 굳이 비싼
저울이 아니라도 젓가락 양 끝에 실을 달고, 실 끝에다 화살을 메달아 보면 화살의 무게를 상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무게중심도
화살을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의 물건 위에다 화살을 올려놓고 평형을 유지한 점에 표시를 하면서 확인하면 된다.
활과 화살은 생명이 있는 물건이다.
숨을 쉬는 생명체다.
궁사가 부지런히 많은 애정과 관심을 주면 활이나 화살도 좋아한다. 그 모습을 금방 알 수 있다. 활과 화살이 건강한 상태인지 아닌지
눈으로 보면 구분이 간다. 건강한 상태는 힘이 넘쳐나고 밝은 색감이 묻어나며 깨끗하다.
그러나 힘이 없어 보이고, 꾀죄죄하며, 깃은 헝클어져 있고, 촉 부위에 흙이 묻거나 녹이 슬어 있다면 건강하지 않은 것이다.
죽시가 아닌 카본화살도 마찬가지다.
궁도라 함은 활터에서 활을 낼 때만 일컫는 말이 아니라고 본다.
한 사람의 인격은 그 사람의 평소 행동이 쌓여 나타나듯이, 궁도는 활 터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어디에 있던, 있는 그 자리에서도 이루
어진다고 본다.
늘 부지런히 궁시를 잘 다듬어 모두가 건강하고 멋진 궁도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만오(晩悟) 김용욱(청주 우암정)
※ 동백기름은 화장품 가게나 대형 매장에 가면 구입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