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신(道信) 스님은 황메이(黃梅)현으로 가다가 주(周)씨 성을 가진 7세 된 동자 한 명을 만났다. 도신 스님은 총명해 보이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네 성이 무엇이냐?”
동자가 대답했다.
“저는 성이 없습니다.”
“성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불성은 공(空)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불성을 가졌기 때문에 성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로서 불성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신 스님은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동자가 자기를 일러 무성아(無姓兒)라고 한 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연기설화가 하나 전해져 오고 있다
도신 스님은 쌍봉산(雙峯山)에 행화 도량을 만든지 오래 되었을 때까지도 법을 전해 줄 제자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이웃에 소나무를 많이 심어 재송 도자(栽松 道者)라 불리는 나이 많은 노인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그가 도신 선사를 찾아와서 말했다
"제가 스님의 제자가 되어 법을 이으면 안 되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도신 선사가 대답했다.
"당신도 나처럼 나이가 많은데 언제 깨닫고, 누구를 제자로 정해서 법을 전할꼬?”
재송 도자가 다시 물었다.
"그럼 제가 몸을 바꾸어 오면 되겠습니까?”
이에 도신 선사가 대답했다.
“몸을 바꾸어 오기만 한다면 법을 전해 주겠네."
재송 도자는 약속의 증표로 소나무 한 그루를 도신 선사의 방앞 뜰에 심어놓고 떠났다. 마을로 내려온 그는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한 처녀의 몸으로 들어가 새 생명으로 잉태되었다. 배가 불러오자 부모들은 딸에게 누구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냐고 추궁했다.
그러나 처녀의 입장에서는 남자와 상관한 일이 없고, 그래서 누구의 씨를 잉태한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억울할 뿐 들려 줄 말이 없었다. 처녀의 부모는 집안 망신을 시킨 딸을 쫓아내고 말았다.
때는 엄동설한이어서, 굶어 죽지 않으면 얼어 죽을 판이었다. 그러나 쫓겨난 처녀는 희한하게도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밥을 주고 잘 곳을 내주어, 별 고생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달이 차자,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하였다.
처녀는 아들을 낳았지만 자식을 얻은 기쁨보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더 강했다. 그녀는 원인도 모른 상태에서 임신이 되어 자신을 집에서 쫓겨나게 만든 아이를 증오한 나머지, 신생아를 강가에다 내다버리고 말았다. 그 후 산모는 사흘이 지나도록 어디를 가도 식은 밥 한 사발 얻어먹을 수가 없었다. 잠을 잘 곳도 구하지 못해 밤이슬을 맞으며 노숙을 해야 했다.
한편 강가에 버려진 아이는 물오리들이 몰려들어서 바람을 막아주고 물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보호를 해주었다. 그런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이 아이를 구하여 애 어머니를 찾아서 데려다주었다. 다시 아이를 거둔 후부터 어머니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밥을 대접받고 잠 잘 곳을 얻었으므로 살아가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아이는 어머니에게 절에 가자는 말을 했다. 졸라대는 아이의 말을 따라 한 절을 찾아가니, 그곳이 바로 도신 선사가 있던 4조사였다. 아이 엄마는 공양주보살 자리를 구하여 그 절에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법당에서 놀다가 갑자기 뒤가 마려워 그만 그곳에다 실례를 하고 말았다. 이를 목격한 부전 스님이 화를 벌컥 냈다.
“아무리 철없는 아이라지만 감히 부처님 계신 곳에다 볼 일을 볼 수 있단 말이냐!”
그러자 야단을 치는 부전 스님을 빤히 바라보던 아이가 말했다.
“부처님의 몸은 온 우주 법계에 꽉 차 있으니(佛身充滿於法界), 어디 부처님 안 계신 곳이 있으면 나에게 일러주시오. 그러면 내 그 곳에 가서 다시 볼일을 보겠어요.”
그 말을 전해들은 도신 선사가 아이를 데려 오라 한 다음에 물었다.
“너는 누구냐?”
아이가 대답했다.
“재송(裁松)이가 돌아 왔습니다.”
“네가 재송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고?”
그러자 방 앞의 소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이 제가 심었던 나무 아닙니까."
아이가 재송 도자(栽松 道者)의 후신이라는 전생력을 믿기 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가에서는 영겁 불망하는 열반묘심을 성취하면 성상불이(性相不二), 심신일여(心身一如)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 속에 들어있는 무한한 능력을 개발하면, 물질적인 것에 자유자재한 색자재(色自在)와 심적인 것에 자유자재한 심자재(心自在), 모든 법에 자유인 법자재(法自在)를 얻을 수 있다.
이 세 가지 자재를 얻게 되면 여래가 된다. 성상불이 심신일여의 여래가 되면 중생제도를 위하여 분신도 하고 화신(化身)도 할 수 있다. 이런 경계를 부사의 해탈경계(不思議 解脫境界)라고 한다.
그렇지만 5조의 재송 도자설은 어디까지나 설에 불과하고, 안저우(安州)의 수산사(壽山寺)에서 수행했던 색(賾)이라는 스님이 쓴『능가인법지(楞伽人法志)』라는 문헌에는 홍인 대사의 속성이 주(周) 씨고, 조상은 순양(尋陽)에 살았으며, 본적이 황메이현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사실로 믿어도 될 것이다.
4조가 5조에게 내린 전법송은 다음과 같다
華種有生性
因地華生生
大緣與信合
當生生不生
꽃종자에 생명의 성품이 있으니
땅으로 인하여 꽃이 나게 된다
큰 인연과 믿음이 어우러질 때
나지만, 이 남은 남이 없는 것이다
5조는 은사인 4조 도신 대사가 원적에 든 후 쌍봉산을 떠났지만 멀리 간 것이 아니고, 같은 황메이현의 동쪽에 있는 풍무산(馮茂山)으로 옮겼다. 10리쯤 서로 떨어져 있으며, 쌍봉산이 서쪽이고 풍무산은 동쪽이다. 이에 사람들은 4조사가 있던 쌍봉산을 서산(西山), 5조사가 있는 풍무산은 동산(東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곳에서 행한 5조의 설법을 일컬어 동산법문(東山法文)이라고 한다.
동산에 머물 때의 5조에 대하여 문헌에는 관용하고 가슴 속의 회포는 순수하며, 선악의 시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물질이 본질적으로 공허하다는 경지에 만족했다 전하고 있다. 그리고 선사께서 항시 노동에 힘써 봉사하였기 때문에 문도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고 적혀 있다.
5조의 이런 생활태도를 많은 학인들이 본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스님은 다른 사람 대신 노역을 해주었고, 도반들의 옷이 해지거나 때가 낀 것을 보고 몰래 손질하고 세탁해주었으며, 화장실 청소를 하고, 똥물을 퍼 나르는 식으로 낮에는 봉사하고, 저녁이면 불쏘시개를 모아서 등불을 마련하여 경전을 읽는 식으로 대중생활을 영위했다. 이것이 선종의 한 수행 방법인 작무(作務)와 보청(普請)의 시발점이 된 것이라 사료된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요즈음의 한국 선방 풍습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참선을 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위업을 세우는 것이라도 되는 양, 손끝 하나 까닥하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올리는 공양을 당연한 듯 받는가 하면, 절의 소임을 맡아 부득이 선방에 들지 못하는 스님을, 사판승(事判僧)이라 여겨 하찮게 취급하는 풍조도 있다. 올바른 자세는 아니지 싶다.
『능가인법지』에 5조는 명상을 위하여 오로지 전신의 힘을 다하고 홀로 우뚝 솟은 자기 성찰의 경지를 보여주었다고 적어 놓았다. 그로서는 걷거나 멈추거나 앉거나 눕거나 모든 행동거지가 진리의 장소요, 행동과 말과 마음의 세 가지 동작 전부가 한결같은 불교의 생활이었다. 그에게는 고요함이나 어지러움이 다른 것이 아니었으며, 말을 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항상 통일을 잃지 않았다.
그런 그의 선풍이 알려지자 사방에서 학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는데,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사람이 싱저우(刑州) 출신의 신수(神秀)였다. 그는 경과 율에 두루 통하고 박학다식한 수좌로서, 문도들은 모두 그가 5조의 법을 이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러나 불법이 알음알이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여긴 5조는, 무식하지만 자성을 바로 본 혜능에게 의발을 전하는 선택을 했다. 이것이 선종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혁신적인 선택이었기에 좀처럼 내리기 어려운 결단을 한 5조를 더욱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 한 스님이 5조에게 물었다.
“도를 배우는 데 어찌하여 도시나 읍내 또는 마을에서 하지 않고 산중에서 해야 합니까?” 5조가 대답했다.
“훌륭한 건물의 재목은 본래 깊은 산속에서 나온 것이지 세속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쉽사리 칼이나 도끼에 찍히지 않은 채로 하나하나가 빼어난 재목으로 자라난 뒤라야 비로소 귀중한 마룻대나 대들보로 쓰이게 된다.
따라서 정신을 그윽한 골짜기에 머물게 하여 시끄러운 속세의 먼지를 멀리 피하고, 본성을 산중에서 기름으로써 세속의 일을 딱 끊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눈앞에 아 무 것도 없어야 마음이 저절로 안정된다. 여기서부터 차차 깨달음의 나무는 꽃을 피우고, 명상의 숲은 열매를 맺는다.”
5조는 이렇게 산중에서 그지없이 고요하게 침잠하여 좌선을 할뿐 저술 하지는 않았다.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면서 깊고 깊은 도리를 가르칠 따름이었다.
5조가 제자들을 지도하기 위해 남긴 말씀들을 몇 개 모았다.
“여기 혼자 사는 집이 있다. 그 속은 가득히 똥과 잡초로 차 있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인가?”
“똥과 잡초를 집어 치우고 깨끗하게 소제하여 티끌 하나 없는 것, 이것은 또 무엇인가?”
“그대들이 좌선할 때는 평평한 바닥에 몸을 단정하게 똑바로 앉아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넓게 펼치고, 멀리 시야가 끝나는 언저리에 한일(一) 자를 지켜보는 것이다. 반드시 진척이 있을 것이다. 만약 또 초보자로서 대상적 집착이 많아서 곤란한 사람은 서슴없이 마음속으로 한일자를 떠올린다.
마음이 고요하게 가라앉은 뒤에 앉아 있으면 그 경지는 마치 끝없는 광야 속에서 멀리 하나만 우뚝 솟은 높은 산에 이르러서, 산꼭대기에 앉아 넓은 사방을 두루 살펴보면, 어디도 끝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좌선을 할 때는 세상 가득히 몸과 마음을 그지없이 넓고 편안하게 열어젖히고, 부처님 경지를 맛보는 것이다. 부처님의 청정한 진실의 주체는 어디에도 끝이 있을 수 없다. 그대 심경 역시 그것과 마찬가지다.”
“그대들이 마침 완전하게 진실의 주체를 깨닫는 그 시점에서는 대체 누가 그 깨달음을 확인하겠는가?”
“부처님은 32종의 몸의 특징이 갖추어져 있다고 하는데 물독에도 32종의 특징이 있겠는가? 또 기둥에도 32종의 특징이 있을 것인가? 정원에도 32종의 특징이 있을 것인가?”
5조가 부젓가락을 놓고 물었다.
“어느 것이 길고 어느 것이 짧은가?”
또한 5조는 누가 등불을 켜거나 여러 물건을 만드는 것을 보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꿈을 꾸고 환상술을 보고 있다.”
어떤 때는 이렇게도 말했다.
“아무 것도 만들지 않아도 모든 존재는 그대로 완전한 니르바나의 경지에 있는 것이다.”
“생겨난 것은 모두가 그대로 생겨날 수 없는 존재임을 명심하라. 생겨나 있는 존재 이외에 생겨나지 않은 다른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가르주나(龍樹)는 이렇게 말한다. 일체 존자는 그 스스로 생겨나지 않으며, 또 다른 원인으로 생겨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타의 중간에서 생겨났거나 원인 없이 생겨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일체 존재는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다.
만약 물질이 연분에 따라 생겨난다면 곧 그 자체가 실체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만약 그 자체의 실체가 없다면 어찌 존재라는 것이 있겠는가? 또 말한다. 허공은 중앙이나 변두리라는 것이 없다. 모든 부처님 몸도 또한 그와 마찬가지다. 그대들이 완전무결하게 부처님의 본질을 깨달은 바를 내가 인가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대들이 바로 절 안에서 좌선하고 있을 때, 산중 숲속에서도 그대들 몸이 가서 좌선할 수 있을까? 모든 정원이나 건물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좌선할 수 있을까? 그 정원과 건물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색깔을 보고 소리를 듣고, 옷을 입고 밥그릇을 가질 수 있을까? 『능가경』에서 대상화 주체적 진리라고 한 말은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함형 5년 2월 대사께서는 문도들에게 묘탑을 세우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제자들은 4각 자연석을 구해다가, 규모 있고 아름다운 탑을 지었다. 그 달 14일에 5조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탑은 다 되었는고?”
“네.”
그러자 5조께서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날과 같아서는 안 되는데······”
2월 15일은 부처님이 입멸하신 날이다. 그 날은 피해서 원적에 들겠다는 뜻을 넌지시 밝힌 것으로 사료된다. 5조는 15일을 하루 넘기고 16일 아침이 되었을 때 남쪽을 향해 앉은 다음 선정에 들어, 숨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가 다시는 내 쉬지 않는 것으로, 이승의 삶을 마감하였다. 이때의 세수가 74세다.
노자산(盧子産)이 안저우의 수산사 벽에다 5조의 초상화를 그렸고, 전 병부상서였던 이형수(李逈秀)는 다음과 같은 찬양시를 지어 붙였다.
倚歟上人
冥契道眞
攝心絶智
高悟通神
無生證果
現滅同塵
今玆變易
何歲有隣
세상에서 위대한 스님은
말없이 도의 진실과 일치하였다
마음을 통일하여 지혜의 한계를 다하고
뛰어나게 깊은 정신을 깨달았다.
만들어진 것이 아닌 궁극의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새삼 입멸의 모습을 나타내어 세속 오염에 동화했다.
이제 이 자유로운 변화의 몸에 대하여
어느 때나 그 경지에 갈 수 있을꼬.
혜연선사발원문/영인스님